200503 / 자식은 여호와의 기업입니다 / 시편 127:3-5 / 조재진 목사

May 8, 2020

시편127편 3-5절

3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4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5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자식은 여호와의 기업입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교회에서는 어린이들을 소중히 여겨서 5월 첫 주일을 어린이 주일로 정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지나간 과거는 여자와 어린이들이 참으로 천대받는 시대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 사회에서는 사람들의 숫자를 셀 때, 여자와 어린이는 제외시켰고, 로마사회에서도 부모가 아이를 마음대로 버리거나 노예로 팔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여자와 어린이를 소유의 개념으로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자와 어린이가 천대받는 사회는 과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이슬람문화권이나 다른 문화권에서는 여전히 천대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복음이 전파된 나라들마다 여자와 어린이의 인권을 존중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이 사람을 볼 때, 남자와 여자, 혹은 어른과 아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구분하지 않고,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귀한 존재라고 가르치기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모든 사람의 구원자로 이 땅에 오셨고, 여자와 어린이를 위해서도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따라서 여자와 어린이를 무시하거나 학대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자녀를 학대하는 가정, 어린이를 무시하는 국가와 민족은 바로 설 수 없습니다. 어린이를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좋은 나라이며, 선진국입니다. 어린이를 사랑하고 아끼는 것은 한 나라의 미래를 가꾸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자녀는 여호와의 기업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27편은 ‘솔로몬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시’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습니다. 솔로몬이 쓴 시로, 예배 때 찬송으로 불렀던 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에서 솔로몬이 어떤 자식관(子息觀)을 가지고 살았는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 본문 3절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보라 자식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여기에 보면, ‘보라’라는 말로 이 구절이 시작이 됩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 ‘힌네(הִנֵּה)’라고 하는데, 어떤 특별한 사물이나 인물을 주목하게 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말하자면 중요하니까 ‘주목해서 들어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목해서 들어야할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식이 여호와의 기업이며 그분이 주신 상급이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한 가정에서 자식, 특히 아들이란 한 집안의 혈통을 이어갈 존재로, 하나님께서 그 집에 주신 특별한 선물이라고 보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단어가 바로 ‘기업’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회사(company)나 사업(business)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발음은 같아도 한자어로 뜻은 전혀 다른 말입니다. (자 방송실 글자를 보여주세요) 회사나 사업을 의미하는 ‘기업’은 ‘꾀할 企’와 ‘업 業’이라는 한자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본문이 말하는 기업은 한자어로 ‘터 基’와 ‘업 業’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대대로 이어오는 재산과 사업’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 ‘유산(inheritance)’ 혹은 ‘유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보통 기업이 아니라 ‘여호와의 기업(נַחֲלַת יְהוָה)’이라고 본문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기업, 하나님께로부터 온 유산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두고 본다면, 우리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것, 우리에게 복과 상급으로 주신 귀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여호와의 기업’이라는 말은 구약성경에서는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 말이 성경에 처음 사용된 곳이 창세기 17장 8절입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아브라함은 원래 갈대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서 ‘네 고향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 저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왔을 때, 하나님은 ‘이 가나안 땅을 장차 네 자손에게 주어 대대로 이 땅에 살게 하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말하자면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은 ‘여호와의 기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 가나안 땅이 아니라, ‘자식’을 ‘여호와의 기업’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이 여호와의 기업이 된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자식’이 여호와의 기업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우리자녀를 여호와의 기업으로 생각하고 소중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 자녀를 여호와의 기업으로 여기는 것일까요?

 

자녀를 하나님의 선물로 여겨야 합니다.

 

첫째, 우리는 자녀를 하나님의 선물로 여겨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사실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이 자기 힘으로 차지할 수 있는 땅이 아닙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땅입니다. 애굽에서 400년 종살이 하던 그들이 어떻게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그곳에서 나라를 세울 수 있겠습니까?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더군다나 가나안 땅에는 이미 크고 강대한 민족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땅을 선물로 주시고 그곳에서 대를 이어 살게 하신 것입니다. 요즘 말로 표현한다면 ‘어쩌다 가나안!’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어쩌다 가나안 땅에 들어와 살게 된 것입니다.

우리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아이가 우리 자식이 될 것을 우리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아들일지 딸일지, 내성적인 아이일지 외향적인 아이일지, 머리가 좋은 아이일지 마음이 따뜻한 아이일지, 건강한 아이일지 장애를 가진 아이일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낳고 보니까 아들이고 딸이고, 낳고 보니까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가 태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 입장에서 보면 ‘어쩌다 부모!’가 된 것입니다. 자식 입장에서 보면 ‘어쩌다 자식!’이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의 계획대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가까이 지내는 목사님이 농담처럼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우리 집에는 특별한 동물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한 마리는 캥거루고 다른 한 마리는 백조입니다.’ 캥거루는 장가갈 생각은 안 하고 얹혀사는 아들을 두고 한 말이고, 백조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지 못한 채 취업 준비만 여러 해 하고 있는 딸을 두고 한 말입니다. 그래서 저도 농담조로 대꾸했습니다. ‘사람 아닌 짐승을 키우고 계시니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가까이 지내는 목사님이 진지하게 자기의 속내를 털어놓았습니다. ‘가끔은 다른 집 자식들이 부러울 때도 있어요. 그렇지만 힘들고 어려우면서도 기도하며 잘 버텨내는 것을 보면 대견하기도 하고 사랑스러워요. 그래서 내게 이런 아이들을 자식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지요’ 그때 제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식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때론 선물이 기대 이상이어서 기뻐하는 것처럼, 자식이 부모의 기대 이상이어서 기뻐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선물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실망할 때가 있는 것처럼, 자식도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가 있어서 실망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물을 준 사람의 속 깊은 마음을 알게 되면 그 사랑과 배려 때문에 실망을 떨쳐버리고 감사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에게 자식을 보내주신 하나님의 속 깊은 뜻을 깨닫게 되면 자식에 대한 실망, 불평, 그리고 원망을 떨쳐버리고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종교 개혁자 존 칼빈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자식을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여겨야만 자기 자녀들을 매우 뛰어나게 기르게 된다.” 여러분, 자녀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축복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자녀를 주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감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사명입니다.

 

둘째,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라는 말씀은 자식은 부모에게 ‘사명’, 혹은 ‘숙제’라는 말입니다. 어떤 학자는 여기에 나오는 ‘기업’, ‘나할라타(נַחֲלַת)’를 현대적인 말로 ‘숙제’라고 번역했습니다. 자녀는 어떤 의미에서 부모에게 사명이고 숙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 가나안 땅이 그랬습니다.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에게는 선물이자 동시에 사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으로 주신 기업이 분명했지만, 그 땅은 그때까지만 해도 여호와의 기업이 아니라 온갖 죄악으로 더러워져 있고, 온갖 우상을 섬기는 땅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땅을 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리고 성도 무너뜨리고, 아낙자손들도 쫓아내고, 우상들을 깨뜨리고, 이방신을 섬기는 악한 자들을 다 몰아내고, 그리고 그 땅을 여호와의 기업이 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선물이자 동시에 사명이었습니다.

우리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지만 부모가 돌보고 양육해서 하나님의 기업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부모에게 자녀 양육의 사명, 자녀교육의 숙제를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아이를 낳기만 하면 저절로 자라고, 자기가 알아서 잘 컬까요? 보통 아이들은 자기가 저절로 자란 줄 압니다. 그래서 때로는 ‘엄마 아빠가 해 준 게 뭔데~’라고 부모의 마음에 아픔을 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 아이한테 엄마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네가 결혼해서 꼭 너 같은 아이 낳아봐라”

얼마 전에, 선교사 딸이 셋째를 낳았습니다. 이제 한 달 정도 되었는데, 사위하고 손녀 둘, 이렇게 다섯 식구가 우리 집에 들어와서 같이 살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 집은 안식처가 아니라 전쟁터 같습니다. 낮에는 손녀 둘이 사내아이들처럼 소란을 피우지요, 밤에는 갓난아이가 울지요~ 가만히 보면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자녀를 통해 부모가 누리는 축복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소중한 자녀를 맡겨주셨겠습니까? 분명합니다. 여호와의 기업이 되도록,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말씀이 신명기 6장에 나오는 ‘쉐마’의 말씀,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유일한 여호와시티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4-5)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어서 이렇게 명령했습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한 마디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이 말씀을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쉐마’의 말씀을 따라 유대인 어머니들은 아이들이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가 되면, 이 ‘쉐마’의 말씀을 읽어주고, 외우게 한다고 합니다. 자녀에게 하나님 신앙을 가르치는 것을 사명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여러분 ‘아이가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라는 것은 부모의 신앙교육에서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자녀교육의 방향과 내용은 우리 자녀가 여호와의 기업,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예수님을 구원자로, 또한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지런히 성경을 읽게 하여 하나님을 알게 하고, 무엇을 하든지 기도로 하나님께 묻고 행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혹시 여러분은 자녀에게 성경적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해 가정예배를 드리고 자녀에게 성경을 읽게 하고 있습니까? 어떤 부모는 주일에 한번 예배드리러 가는 아이에게도 학원가야 하니까 교회에 가지 말라고 합니다. 그렇게 한다고 다 1등하고,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아닌데, 자녀의 인생에서 오히려 가장 소중한 하나님 말씀을 들을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이는 훌륭하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훌륭하게 키워지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뛰어난 과학자, 훌륭한 정치가, 위대한 사상가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땀과 눈물과 기도로 키워지는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드리는 것은, 우리 아이들이, 큰 애는 목사가 되었고, 둘째 딸은 선교사로 주님께 헌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아내의 역할, 아내의 신앙교육의 큰 힘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내는 밤마다 성경을 읽어주고, 기도를 가르쳤습니다. 주일예배를 철저하게 지키도록 했고, 꼭 십일조를 드리게 했습니다. 그래서 아들은 어렸을 때 태권도 학원에 다녔지만 검은 띠를 한 번도 매지 못했습니다. 당시 국기원은 꼭 주일에 승단시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딸은 ‘걸 스카웃’이나 ‘아람단’에 그렇게 들어가고 싶었지만, 결국 못했습니다. 늘 주일을 끼고 수련회를 다녀와야 했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제 기억으로는 큰 아이가 초등학교 5-6학년 쯤 되었을 때, 저녁에 아내는 아들을 앉혀놓고 아이의 잘못을 꾸중하다가, 아들이 진짜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마음에 영접했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는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내와 아들, 둘이 이야기를 시작하고 기도했는데, 나중에는 저와 딸도 아들의 손을 붙잡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던 중에 갑자기 아들이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저와 아내도 같이 방언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날 성령님이 그곳에 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들의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자녀는 부모의 사명이며 숙제입니다. 그러니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것처럼, 교회에 데리고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해야 합니다. 세상 지식을 위해 학원에 보내고, 과외를 시키는 것처럼, 여호와의 기업이 되도록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가르치고,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를 축복해야 합니다.

 

셋째, 자식이 여호와의 기업이기 때문이 우리는 자녀를 축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 거룩한 백성으로 삼고 그들을 축복하기 원하셨습니다. 민수기 6장 22-27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 곧 제사장들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축복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이스라엘의 백성을 축복하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실제로 이 명령을 받은 제사장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그대로 축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축복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기업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 하던 볼품없는 민족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해서 하나님의 기업으로 세우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을 세워 날마다 그들을 축복하고 또 축복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여호와의 기업으로 세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같은 방법으로 부모를 통해 우리 자녀를 축복하여 여호와의 기업이 되도록 하십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처럼, 가정의 제사장으로서 자녀를 이렇게 축복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는 000에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000에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000에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

실제로 부모의 축복 기도를 받으며 자란 아이는 다릅니다. 부모의 기도에는 자녀를 여호와의 기업으로 세워갈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사에서 ‘기도의 어머니’를 찾으라고 하면, 첫 번째로 꼽히는 사람이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Monica)입니다. 아들 어거스틴이 방탕한 생활을 하며 어린 나이에 아들을 낳고, 또한 마니교를 신봉하여 이단 종교에 빠졌을 때, 모니카는 아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1년, 2년이 10이 지나도록 애타게 기도했습니다. 한번은 교회에 와서 눈물로 기도하고 있을 때, 암브로시우스 감독이 그녀를 격려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매여 눈물로 기도한 자녀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모니카는 이 말에 큰 힘을 얻고 더욱 더 열심히 아들을 위해 기도했고, 결국 어거스틴은 회심하여 위대한 신학자가 되었습니다. 후에 어거스틴은 『참회록』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의 기도 때문입니다. 나는 이 사실을 주저없이 인정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내게 진리 발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마음, 그밖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밖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밖에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도록 된 마음을 주신 것은 어머니의 기도 덕분입니다. 그렇게 큰 유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한 것이 어머니의 기도였던 것을 나는 의심치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의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통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녀의 현재 모습에 너무 실망하지 말고 눈물로 기도하고, 주의 이름으로 계속 축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복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자녀는 여호와의 기업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이고, 또한 우리가 끝까지 축복하며 기도해야 할 기도의 제목입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여호와의 기업으로 귀하게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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